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서울 주택 인허가 실적이 목표치의 30%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주택 공급 감소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업 기간 단축, PF 모니터링 강화 등 관련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국토연구원, 대한건설정책연구원, 한국부동산개발협회와 7일 ‘주택·부동산경기’ ‘주택공급 과제’를 주제로 ‘부동산시장 현안 대응을 위한 릴레이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에서 47만 가구 주택을 공급(인허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성적표는 38만9000가구(82.7%)에 그쳤다. 수도권(69.4%)과 서울(32.0%) 실적이 특히 부진했다.
인허가 이후 절차도 속도가 더디다. 아직 첫 삽을 떼지 않은 전국 아파트 미착공 물량은 2021년 19만1000가구에서 작년 상반기에만 33만1000가구로 14만 가구 증가했다. 아파트 인허가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은 같은 기간 7.9개월에서 11.6개월로 늘어났다. 고금리와 시장 침체 속에 신규 PF가 중단되고 유동화증권 발행이 급감한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건설산업연구원은 현재 PF 익스포저(위험 노출) 규모를 202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올해 전망도 녹록지 않다. 건설산업연구원의 올해 전국 주택 인허가 예상 규모는 35만 가구로, 지난해(38만8891가구)보다 1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52만1791가구)과 비교하면 33% 급감한 수준이다. 민간 부문 감소 폭이 크다. 올해 전국 분양 물량은 26만 가구(예상)로 작년(19만2425가구)보다 많지만 2019~2022년 평균치(32만1873가구)보다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PF 대주단 협약 시행 등 유동성 지원과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김지혜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을 조정·예방하고 신탁방식 사업장에서 주민 의견 반영 기능을 개선하는 등 사업 기간 단축 관련 추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지역 건설사가 공급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리츠(부동산투자회사) 활용 방안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업비 조달, 인건비, 자재값 등 모든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며 “공급을 활성화하더라도 시장에서 기대하는 주택 가격과 격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전국 아파트값이 2% 하락(수도권 -1%, 지방 -3%)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재건축·재개발 지원 정책에만 초점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으로 사업성 높아져 리모델링 규제는 오히려 강화 강남·평촌신도시 등서 리모델링 사업 철회 속출
재건축·재개발과 함께 정비사업의 한 축을 형성하던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노후 단지에서 조합이 해산되거나 시공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 초점이 대부분 재건축·재개발에만 맞춰져 있어서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쪽과 리모델링을 원하는 쪽이 격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송파구 강변현대아파트는 리모델링 조합 해산 절차를 밟고 있다.
리모델링 사업 추진이 활발했던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도 분담금 문제와 재건축을 원하는 소유주의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분당신도시 매화마을 1단지는 리모델링 사업 추진을 잠정 중단했다. 평촌신도시에선 은하수마을청구·샘마을대우·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다.
경기 군포시 산본8단지의 경우 시공사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포기했고, 용인시 현대성우8단지는 주민들이 사업 동의를 철회하면서 리모델링 사업 승인 신청이 취하됐다.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정부가 리모델링 활성화 정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분양가 상한제 폐지(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제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등을 시행했다. 올해 들어선 1·10 대책('주택 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을 통해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재건축 패스트트랙'도 도입했다. 이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과 시행령을 통해 1기 신도시를 포함한 노후계획도시 대상을 전국 108곳으로 확대하고, 이 지역 허용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5배까지 늘려 사업성을 높였다.
반면 리모델링 사업 추진 문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 2차 안전진단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재건축 등에 초점을 맞춘 정책에 기존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형평성에 어긋나고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 갈등이 지속되면 사업이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지난달 기준 서울에서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76곳이다. 이 가운데 23곳은 올해까지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하면 총회를 열고 조합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강동구 둔촌현대2차·고덕아남·길동우성2차와 송파구 가락쌍용1차 등은 올해 상반기 총회가 예정됐다. 하지만 나머지 19개 단지는 기약조차 없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안전진단도 면제하고 용적률도 대폭 높여주겠다는 정부의 재건축 지원 정책 때문에 리모델링에 나설 단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경매 건수가 3000건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3년2개월 만에 최대치다.
7일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인 지지옥션이 발표한 '1월 경매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경매 건수는 2862건으로, 전월(2233건) 대비 28.2%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20년 11월(3593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경매 건수가 313건으로 전달(215건)보다 45.6% 늘었다. 서울의 아파트 경매 건수가 300건을 넘은 것은 2015년 6월(358건) 이후 처음이다.
전국 아파트 평균 낙찰률은 38.7%로 전달(38.6%)과 비슷했다. 감정가 대비 낙찰가를 뜻하는 낙찰가율은 전달보다 1.5%포인트 오른 83.2%로 나타났다. 평균 응찰자 수는 8.3명으로 전달(7.0명)보다 1.3명 늘었다. 서울의 낙찰률은 37.7%로 전달(29.8%)보다 7.9%포인트 상승했다. 여러 차례 유찰된 아파트가 다수 소진되면서 낙찰률이 오른 것을 풀이된다.
낙찰가율은 86.2%로 전월(80.1%) 대비 6.1%포인트 상승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가 낙찰가율 상위 10건 중 9건을 차지할 만큼 강세를 보이면서 전체 낙찰가율 상승을 견인했다. 평균 응찰자 수는 9.0명으로 전월(6.1명)보다 2.8명 늘었다.
지지옥션은 경매 건수 증가에 대해 "매매 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매각 물건 증가세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